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때를 떠올리면 조금 웃음이 납니다.
6개월을 채우고 나서, 심지어 지금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 제가, 첫 주에 그만두려 했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입니다. 첫 주 목요일 저녁, 저는 진지하게 그만두는 걸 고민했습니다. 배우자한테도 말했습니다. "나 거기 못 하겠어." 그 말이 입에서 나왔을 때, 배우자가 뭐라고 했는지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왜 그랬는지,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1. 몸이 먼저 항복했습니다
1-1. 새벽 4시 반 기상, 사흘이 지나자 한계가 왔습니다
첫날은 긴장감으로 버텼습니다. 둘째 날은 의지로 버텼습니다. 셋째 날부터는 버티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고 있다는 느낌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알람이 울리면 몸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일어나야 한다는 걸 머리는 알고 있는데, 몸이 이불을 놓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일어나서 세수하고 차에 타면, 운전하면서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사찰에 도착해서 공양간 문을 열면 이미 보살님들이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이걸 매일 하시는 걸까, 진심으로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여쭤봤더니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엔 다 힘들어요.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냥 버텨야 해요."
그 말이 위로가 됐냐고요? 솔직히 첫 주엔 아니었습니다.
1-2. 서서 일하는 시간이 이렇게 길 줄 몰랐습니다
공양간 일은 거의 서서 합니다. 재료 손질, 조리, 설거지, 청소. 앉아서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퇴직 전에 주로 책상에 앉아서 일했습니다.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어요. 첫날 퇴근하고 나서 발바닥이 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종아리가 퉁퉁 부었고, 허리도 뻐근했습니다.
이틀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은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쓰러져서 그대로 잠들었습니다. 저녁도 못 먹고요.
체력적으로 이렇게 힘들 거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음식 만드는 일인데, 뭐 얼마나 힘들겠어 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게 첫 번째 실수였습니다.
1-3. 손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큰 솥에 국을 끓이고, 무거운 뚜껑을 열고 닫고, 대량의 재료를 손질하다 보니 손목과 손가락이 금세 아파왔습니다. 집에서 가족 밥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특히 4일째 되던 날, 큰 솥의 국을 퍼서 옮기다가 손목이 너무 아파서 잠깐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선배 보살님이 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대신 옮겨 주셨습니다.
그게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2.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2-1. 침묵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사실 더 힘들었던 건 침묵이었습니다.
공양간은 조용한 공간입니다. 꼭 필요한 말만, 작은 목소리로. 저는 원래 말이 많은 편입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일하는 걸 좋아했고, 점심시간엔 수다 떠는 게 낙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찰 공양간에서는 그게 안 됐습니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참았는데, 며칠이 지나자 그 침묵이 압박으로 느껴졌습니다. 말을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게 이렇게 답답한 줄 몰랐습니다.
더 힘들었던 건 보살님들이 제게 먼저 말을 거의 걸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차갑거나 불친절한 게 아니었는데, 처음엔 그게 잘 구분이 안 됐습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마음에 안 드시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2.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서 있는 순간들이 힘들었습니다
사찰 공양간에는 매뉴얼이 없습니다. 오늘 뭘 해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지 않습니다. 보고 배우고, 흐름을 익히고, 몸으로 알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그 방식이 첫 주엔 너무 힘들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서 있으면 괜히 눈치가 보였습니다. 도와드리려고 다가가면 이미 다 하셨거나, 제가 끼어드는 게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어정쩡한 느낌, 내가 여기서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느낌이 첫 주 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2-3. 실수를 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첫 주에 크고 작은 실수를 여러 번 했습니다. 공양상 차리는 순서를 틀렸고, 걸레를 너무 축축하게 짰고, 국 간을 맞추다가 너무 싱겁게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실수를 하면 보살님들이 조용히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틀렸는지,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설명을 잘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분들은 말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으로 가르치셨던 거였습니다.
그런데 첫 주의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설명 없이 고쳐지기만 하니까, 내가 계속 실수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게 자존감을 건드렸습니다.
3. 목요일 저녁, 그만두려 했던 그날
3-1. 한계가 온 건 사소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만두려 했던 건 큰 사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목요일 오전, 제가 손질해 놓은 나물을 보살님이 다시 손질하시는 걸 봤습니다. 제가 한 게 마음에 안 드셨던 거였습니다.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냥 조용히 다시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날따라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몸도 이미 한계였고, 침묵도 힘들었고, 뭘 해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쌓여 있던 상태에서, 그 장면이 방아쇠가 됐습니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울 것 같아서 사찰 주차장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3-2. 배우자에게 말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밥도 안 먹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배우자가 뭔가 이상한 걸 알아챘는지 옆에 와서 앉았습니다.
"나 거기 못 하겠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배우자가 이유를 물었고, 저는 첫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습니다. 몸이 힘든 것, 침묵이 답답한 것, 뭘 해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은 느낌.
배우자가 한참 듣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주잖아. 첫 주에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짧은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에 힘이 빠졌습니다. 긴장이 풀린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날 밥을 먹고 일찍 잠들었습니다.
3-3. 금요일 아침, 그래도 갔습니다
다음 날 알람이 울렸을 때, 솔직히 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습관이라고 하기엔 이르고, 의지라고 하기엔 약했는데, 그냥 갔습니다.
공양간에 들어서자 선배 보살님이 평소처럼 계셨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요. 저도 그냥 평소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날 오전, 보살님이 처음으로 먼저 말씀을 거셨습니다.
"이 나물은 이렇게 무치면 돼요. 한번 해봐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게 그날 가장 기뻤습니다.
4. 첫 주를 버틴 것이 전부를 바꿨습니다
4-1. 2주차부터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2주차가 되자 몸이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알람이 전보다 덜 고통스러워졌고, 서 있는 게 덜 힘들어졌습니다. 손목도 굳은살이 생기듯 단단해졌습니다.
침묵도 달라졌습니다. 익숙해지면서 그 침묵이 불편함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오히려 쉼이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4-2. 그만두지 않은 걸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을 마치고 나서 돌아보면, 목요일 저녁 그만두지 않은 게 그 6개월 중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 첫 주를 버텼기 때문에 그 이후의 모든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보살님들과 쌓은 신뢰, 스님께 들은 말씀들, 공양간에서 배운 것들. 그 모든 게 첫 주 금요일 아침에 그래도 갔던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4-3. 지금 힘들다면 읽어보세요
사찰 일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첫 주에 그만두고 싶은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때 배우자가 해준 말을 그대로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첫 주에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첫 주는 원래 힘듭니다. 그 힘듦이 내가 못 하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저는 그걸 첫 주가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만두고 싶었던 그 목요일 저녁이, 돌아보면 제가 가장 성장한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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