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일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아침 공양 준비를 마치고 선배 보살님 뒤를 따라 공양을 올리러 갔습니다. 스님 방 앞에 상을 내려놓고 돌아서려는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스님은 항상 혼자 드시는 걸까? 왜 다 같이 먹지 않는 걸까?
집에서 밥은 같이 먹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직장 다닐 때도 점심은 동료들과 먹었고, 가족이 있으면 저녁은 함께 먹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찰에서는 달랐습니다. 스님은 따로, 보살님들은 따로, 저는 또 따로.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이해가 안 됐습니다. 결국 선배 보살님께 여쭤봤습니다. 그분이 설명해 주신 내용을 듣고 나서, 저는 밥 한 끼를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게 됐습니다.
1. 스님이 혼자 드시는 이유, 단순한 격식이 아니었습니다
1-1. 공양은 수행의 연장입니다
선배 보살님이 처음 해주신 말씀은 이거였습니다.
"스님한테 밥 먹는 시간은 그냥 밥 먹는 시간이 아니에요. 수행이에요."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밥 먹는 게 수행이라니. 그냥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설명을 들을수록 이해가 됐습니다. 스님들은 공양하는 동안 음식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먹는 행위 자체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잡담을 나누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먹는 게 아니라, 먹는 것 자체에 마음을 두는 거예요.
그러니 여럿이 떠들며 먹는 자리가 수행에 맞지 않는 겁니다.
1-2. 발우공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보살님이 발우공양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저는 그 단어 자체를 처음 들었습니다.
발우는 스님들이 공양할 때 쓰는 그릇 세트입니다. 큰 그릇부터 작은 그릇까지 포개어 천에 싸서 보관하는데, 공양 때마다 꺼내서 쓰고 직접 씻어서 다시 싸놓습니다.
흥미로운 건 발우를 씻는 방법이었습니다. 물로만 씻는데, 그 물을 버리지 않고 마십니다. 음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발우에 남은 음식이 없어야 해요. 다 먹는 게 기본이에요."
그 말을 듣고 나서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게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1-3. 공양 전 게송, 처음 들었을 때 멈칫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공양을 올리고 문 앞에 서 있는데 스님 방 안에서 낮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보살님이 귀띔해 주셨습니다.
"공양 게송이에요. 밥 먹기 전에 외우는 거."
공양 게송은 음식을 먹기 전에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수고가 담겼는지를 마음에 새기는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밥 한 그릇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밥 먹기 전에 잠깐이라도 멈추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게송을 외우는 건 아니지만, 그냥 한 번 숨을 고르게 됐습니다.
2. 공양 예절, 배우면 배울수록 놀라웠습니다
2-1. 공양상 앞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것들
스님 공양상을 올리면서 선배 보살님께 배운 것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다 규칙이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공양상을 올릴 때 절대 음식 위로 손이 지나가면 안 됩니다. 반찬을 집어서 건너편에 놓을 때도 위로 넘기지 않고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엔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나 싶었는데, 상 위에 올라간 음식은 이미 스님께 올린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공양상을 올릴 때 자세도 중요했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쿵 내려놓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소리가 나면 마음이 담기지 않은 거예요."
선배 보살님이 하도 여러 번 이 말씀을 하셔서 귀에 박혔습니다.
2-2. 국물이 식으면 안 된다는 것
공양상을 올리는 타이밍도 중요했습니다. 국이 뜨거울 때 올려야 하는데, 너무 일찍 올려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됩니다.
처음엔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가 싶었습니다. 식으면 데우면 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선배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올리는 게 정성이에요. 나중에 고치는 건 정성이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공양 올리는 시간을 맞추는 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예불이 끝나는 시간을 가늠하면서 국 끓이는 타이밍을 조절하는 게 생각보다 꽤 섬세한 일이었습니다.
2-3. 공양이 끝난 후 상을 물릴 때도 규칙이 있었습니다
공양이 끝나면 상을 물리러 갑니다. 이때도 그냥 들고 오면 끝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이 공양을 마치셨다는 걸 확인하고, 문 앞에서 조용히 여쭤봐야 합니다. 문을 갑자기 여는 것도 안 되고, 큰 소리로 부르는 것도 안 됩니다. 살며시 인기척을 내고 기다리는 거예요.
처음에 제가 이걸 모르고 공양 시간이 지났다 싶어서 문을 노크했습니다. 스님이 아직 공양 중이셨는데도 제가 문을 두드린 거였습니다. 선배 보살님이 나중에 조용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 공양 중에는 절대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안 돼요."
그 이후로는 공양상을 물리러 갈 때 항상 조심스러워졌습니다.
3. 보살님들 공양, 스님과 또 달랐습니다
3-1. 공양간 식구들 밥 먹는 시간
스님 공양이 끝나고 나면 공양간 식구들이 밥을 먹습니다. 저도 이때 같이 먹었습니다. 처음에 이 시간이 어색했습니다. 다 같이 먹는 건데, 분위기가 제가 생각하는 식사 자리와 달랐거든요.
떠들거나 웃거나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조용히 먹었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짧게 했어요. 음식 이야기, 오늘 일 이야기 정도. 그것도 작은 목소리로요.
처음엔 불편했습니다.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운 저로서는 이 침묵이 어색했거든요.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까 오히려 이 조용한 식사가 편해졌습니다.
3-2.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무언의 분위기
공양간에서 밥을 먹을 때 음식을 남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요. 본인이 먹을 만큼만 담고, 담은 건 다 먹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였습니다.
저도 처음엔 습관적으로 많이 담았다가 남겼는데, 그게 눈에 띄더라고요. 누가 뭐라 한 건 아닌데, 스스로 민망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적게 담고 부족하면 더 먹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3-3. 밥 먹는 속도도 자연스럽게 느려졌습니다
직장 다닐 때 저는 밥을 빨리 먹는 편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짧으니까 빨리 먹고 잠깐이라도 쉬어야 했거든요.
사찰에서는 달랐습니다. 천천히 씹어 먹는 분위기였습니다. 보살님들을 보면 정말 여유 있게 드셨거든요. 저도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신기한 건, 천천히 먹으니까 적게 먹어도 배가 찼습니다. 6개월 동안 사찰에 다니면서 체중이 조금 줄었는데, 식사량을 줄인 게 아니라 먹는 속도가 달라진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4. 공양 예절이 가르쳐 준 것
4-1. 밥 한 끼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사찰에서 공양 예절을 배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밥 한 끼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예전엔 밥이 그냥 밥이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맛있으면 더 먹고, 귀찮으면 대충 먹고. 그런데 사찰에서 6개월을 보내고 나서는 밥상 앞에 앉을 때 잠깐이라도 멈추게 됩니다.
이 음식이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했는지, 내가 공양간에서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그걸 알고 나니 음식이 가볍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4-2. 충격이었지만, 좋은 충격이었습니다
처음 공양 예절을 배웠을 때 충격이라는 표현을 쓴 건,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그 느낌이 충격이었습니다.
밥 먹는 것도 수행이 될 수 있고, 그릇 하나 내려놓는 것도 마음을 담을 수 있고, 남은 음식 한 조각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태도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스님이 왜 혼자 드시는지 이해하게 된 날, 저는 밥상 앞에서의 제 태도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게 사찰 공양간에서 일하면서 받은 가장 값진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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