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5

사찰에 출퇴근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요즘 어디서 일해?"

퇴직하고 나서 지인들을 만나면 꼭 이 질문이 나왔습니다. 저는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사찰에서 일해."

그러면 열에 아홉은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눈이 동그래지면서 "어? 스님 된 거야?" 아니면 "템플스테이 같은 거 하는 거야?" 둘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라고 설명하면 또 물었습니다. "그럼 거기서 뭘 해?"

설명하기가 참 애매했습니다. 스님도 아니고, 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아르바이트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그냥 매일 아침 사찰에 출근해서 스님 공양 준비하고 제사 음식 만들다가 오후에 퇴근하는 사람. 그게 저였습니다.

6개월 동안 그 생활을 해보니, 왜 아무도 이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저도 시작하기 전까지는 몰랐으니까요.


1. 사찰 출퇴근, 일반 직장과 무엇이 다른가

1-1. 출근 시간이 세상과 다릅니다

일반 직장 출근 시간이 보통 9시라면, 사찰 공양간 출근은 새벽 5시였습니다. 처음엔 그냥 숫자로만 봤습니다. 4시간 차이구나.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4시간이 아니라 다른 세계였습니다.

제가 출근하는 새벽 4시 반, 아파트 복도는 완전히 고요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경비원 아저씨만 계시고, 주차장에는 제 차 시동 소리만 울립니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어서 평소 30분 걸리던 길이 20분도 안 걸렸습니다.

그 새벽 출근길이 처음엔 힘들었는데, 한 달쯤 지나니 오히려 그 고요함이 좋아졌습니다. 세상이 아직 깨어나기 전에 혼자 움직이는 기분,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1-2. 퇴근 시간도 세상과 다릅니다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가 퇴근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장점인 줄 알았습니다. 남들 점심 먹을 때 저는 퇴근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퇴근하면 갈 곳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다 직장에 있고, 카페는 있는데 혼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허전하고. 몸은 피곤한데 오후 시간이 붕 떠 있는 느낌이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결국 저는 퇴근 후 시간을 나름대로 채우는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집에 와서 한 시간 낮잠, 그다음 산책, 저녁에 독서. 그게 자리 잡히고 나서야 이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1-3. 복장 규정이 애매했습니다

일반 직장이라면 복장 규정이 명확하잖아요. 정장이라든지, 캐주얼이라든지. 사찰은 딱 정해진 게 없었습니다.

처음엔 뭘 입어야 할지 몰라서 수수한 색의 면바지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대부분의 보살님들이 밝지 않은 색의 단정한 옷을 입고 계셨어요. 화려한 색이나 로고가 큰 옷은 자연스럽게 안 입게 됐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게 아닌데, 사찰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만들더라고요.


2.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참 다양했습니다

2-1. 신기해하는 사람들

가장 많은 반응은 신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밥은 먹여줘?" "스님이랑 대화도 해?" "무섭지 않아?"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처음엔 일일이 설명했는데, 나중엔 그냥 "응, 공양간에서 밥 만드는 일이야"라고 짧게 답하게 됐습니다. 길게 설명해도 잘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니까요.

2-2. 걱정하는 가족들

가족들 반응은 조금 달랐습니다. 특히 배우자가 처음엔 많이 걱정했어요.

"거기 사이비 같은 거 아니야?" "왜 하필 거기서 일해?" "힘들면 그냥 다른 일 알아봐."

사찰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분들은 뭔가 이상한 곳에 빠진 거 아닌가 걱정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한 달은 퇴근하면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공양간에서 무슨 음식 만들었는지, 보살님들이 어떤 분들인지, 스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두 달쯤 지나니까 오히려 관심을 가지시더라고요. "오늘은 뭐 만들었어?" 하고 먼저 물어보시기 시작했습니다.

2-3. 부러워하는 사람들

예상치 못한 반응도 있었습니다. 부러워하는 분들이 꽤 됐어요.

"나도 그런 데서 일하고 싶다."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겠다."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웃었습니다. 새벽 5시 출근에 100인분 공양 준비하다 보면 마음이 편할 틈이 없거든요.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는 꽤 달랐습니다.


3. 사찰 출퇴근이 일상에 스며든 것들

3-1. 아침이 달라졌습니다

새벽 출근을 6개월 하다 보니 몸의 리듬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주말에 7시 넘어서까지 자는 게 오히려 불편합니다. 눈이 자동으로 5시 전후로 떠집니다.

처음엔 이게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이 새벽 시간이 하루에서 가장 좋은 시간이 됐습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한 시간. 사찰 출퇴근이 남겨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입니다.

3-2.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공양간에서 매일 음식을 만들다 보니,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예전과 달라진 게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는 게 불편해졌습니다.

사찰에서는 음식을 절대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재료 하나하나를 다듬는 손길, 그 시간과 정성을 옆에서 보고 나니 밥 한 그릇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밥을 먹다가 남기려고 하면 공양간 선배 보살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3-3. 말수가 줄었습니다

공양간은 기본적으로 조용한 공간입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곳이에요. 6개월을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밖에서도 말수가 자연스럽게 줄었습니다.

예전엔 침묵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침묵이 편합니다. 굳이 말을 채우려고 하지 않게 됐어요. 가족들이 가끔 "요즘 말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나쁘지 않습니다.


4. 사찰 출퇴근을 해보고 싶다면

4-1. 각오해야 할 것들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시작하면 첫 주를 버티기 어렵습니다. 새벽 출근, 서열과 예절, 말 없는 환경, 체력 소모. 이 네 가지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특히 체력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합니다. 서서 일하는 시간이 길고, 큰 솥을 다루거나 무거운 식재료를 나르는 일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 한 달은 퇴근하면 소파에서 바로 잠들었습니다.

4-2. 얻을 수 있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음식에 대한 감사함, 침묵에 익숙해지는 것,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이런 것들이 6개월 동안 자연스럽게 쌓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이상한 충만함도 있었습니다.

4-3. 아무도 몰라도 괜찮았습니다

"사찰에 출퇴근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제목을 이렇게 쓴 건 불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게 좋았습니다. 설명하기 어렵고, 상상하기 어렵고, 남들이 잘 모르는 일을 한다는 것. 그 안에서 저만 아는 것들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

6개월이 끝나고 나서 그 시간을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도 가끔 합니다.

새벽 5시, 아무도 없는 사찰 마당을 혼자 걸어 들어가던 그 느낌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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