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4

스님께 직접 들은 화 다스리는 방법, 지금도 실천 중입니다

사찰에서 일한 지 석 달쯤 됐을 때였습니다.

그날 아침 출근 전에 배우자와 작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별거 아닌 것이었는데,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차를 몰았습니다. 사찰에 도착해서도 그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공양간에서 재료를 손질하는데 칼질 소리가 평소보다 컸습니다. 선배 보살님이 힐끗 보셨지만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오전 일이 끝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주지 스님이 공양간 쪽으로 지나가시다가 멈추셨습니다. 스님은 저를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마음이 무거워 보이네요. 차 한 잔 할래요?"

그렇게 해서 스님과 단둘이 차를 마셨습니다. 그날 스님께 들은 이야기가 지금도 제 일상에 남아 있습니다.


1. 스님이 먼저 하신 말씀, 화는 나쁜 게 아닙니다

1-1. 화를 없애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스님이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화가 난 것 같던데, 맞아요?"

솔직하게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배우자와 다툰 이야기를 짧게 말씀드렸습니다.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화를 없애려고 하면 더 커져요. 화는 없애는 게 아니라 보는 거예요."

없애는 게 아니라 본다는 말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그걸 보라는 건지. 스님이 설명을 이어가셨습니다.

"화가 올라올 때 그걸 억누르면 어떻게 돼요? 더 강하게 올라오잖아요. 근데 그냥 '아,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하고 바라보면 화가 스스로 약해져요. 불꽃도 건드리지 않으면 혼자 사그라지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1-2. 화의 뿌리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이 이어서 물으셨습니다.

"아침에 배우자분이랑 뭐 때문에 다퉜어요?"

설명을 드렸습니다. 별거 아닌 일이었습니다. 출근 준비하다가 작은 것 때문에 서로 말이 오간 것이었습니다.

스님이 잠깐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 때문에 화가 난 게 맞아요? 아니면 다른 게 쌓여 있던 건 아니에요?"

그 질문에 멈췄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날 아침 다툼은 방아쇠였고, 사실 며칠 동안 피곤하고 답답한 게 쌓여 있었던 거였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화는 대부분 그 순간 때문에 나는 게 아니에요.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가 날 때 그 화의 뿌리가 뭔지 봐야 해요. 뿌리를 알면 화가 조금 이해가 되거든요."


2. 스님이 알려주신 화 다스리는 세 가지 방법

2-1. 첫 번째, 그 자리를 벗어나라

스님이 첫 번째로 말씀하신 건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화가 날 것 같으면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나요. 화가 난 상황 안에 있으면 화가 커질 수밖에 없어요."

자리를 벗어나는 게 도망가는 거 아니냐고 여쭤봤습니다. 스님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망이 아니에요. 불이 붙었을 때 거기서 벗어나는 게 현명한 거지, 그 안에 서 있는 게 용감한 게 아니잖아요."

화가 났을 때 자리를 벗어나는 것. 화장실을 가도 되고, 물 한 잔 가지러 가도 되고, 잠깐 밖에 나가도 됩니다. 그 1~2분이 화의 온도를 낮춰준다고 하셨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배우자에게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앞으로 화날 것 같으면 일단 자리를 피하자고요. 배우자도 동의했습니다. 그 후로 말다툼이 줄었습니다. 자리를 피하면 대부분 5분 후엔 화가 반으로 줄어있었습니다.

2-2. 두 번째, 숨을 내쉬어라

두 번째 방법은 호흡이었습니다.

"화가 나면 숨을 들이쉬고 싶어져요. 근데 내쉬어야 해요. 화는 들이쉬면 커지고, 내쉬면 작아져요."

스님이 시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천천히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쉬는 것이었습니다. 내쉬는 시간이 들이쉬는 시간보다 두 배 정도 길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숨을 내쉴 때 화도 같이 나간다고 생각하면서 해봐요. 처음엔 이게 되나 싶지만, 세 번만 해봐도 달라져요."

그 자리에서 해봤습니다. 진짜로 달라졌습니다.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화의 온도가 조금 낮아지는 느낌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지금도 화가 날 것 같은 순간에 이 방법을 씁니다. 운전하다가 끼어들기 당했을 때, 전화로 답답한 상황이 생겼을 때. 속으로 조용히 길게 내쉽니다. 그러면 클랙션을 누르거나 목소리가 커지는 걸 막을 수 있었습니다.

2-3. 세 번째, 화난 나를 이름으로 불러라

세 번째 방법이 가장 특이했습니다.

"화가 났을 때 속으로 자기 이름을 불러요. '철수야, 지금 화났구나' 이렇게요. 나를 3인칭으로 보는 거예요."

처음엔 이게 무슨 방법인가 싶었습니다. 스님이 설명하셨습니다.

"화가 나면 내가 화가 돼요. 화와 내가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근데 내 이름을 부르면 화난 나를 밖에서 보게 돼요. 나와 화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거예요. 그 거리가 생기면 화를 다스릴 수 있어요."

집에 가서 해봤습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진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화가 올라올 때 속으로 제 이름을 부르면, 잠깐 멈추게 됩니다. 그 멈춤이 생각할 여유를 만들어줬습니다.


3. 스님이 덧붙여 해주신 이야기

3-1. 화를 다 참는 게 좋은 게 아닙니다

차를 한 잔 더 따르시면서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화를 무조건 참는 건 좋지 않아요. 참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안에 쌓이거든요. 쌓인 게 나중에 더 크게 터져요."

그 말이 의외였습니다. 스님이니까 화를 참으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화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도 필요해요. 근데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표현하면 상처를 주게 돼요. 화의 온도를 조금 낮추고 나서 표현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자리를 피하고, 숨을 내쉬고, 나를 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화를 다스린다는 게 참는 게 아니라, 적절한 온도로 낮춰서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3-2. 자주 화가 난다면 몸을 봐야 합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화가 자주 난다면 마음보다 몸을 먼저 봐요. 잠이 부족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몸이 피곤하면 화가 더 쉽게 나요.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해요."

생각해보니 맞았습니다. 사찰에서 일하면서 피곤한 날은 칼질 소리가 커졌고, 잠을 잘 못 잔 날은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이 났습니다. 반대로 몸 상태가 좋은 날은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게 마음 수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몸을 돌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말씀이 지금도 화가 자주 나는 시기에 떠오릅니다. 그런 날은 일찍 자거나 밥을 제대로 먹으려고 합니다.

3-3. 스님이 차를 마저 드시면서 하신 마지막 한마디

그날 차를 다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스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그 사람이에요."

짧은 말이었는데, 그게 그날 가장 크게 남았습니다.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는지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것. 저는 그때까지 화를 안 내는 게 목표였는데, 화를 어떻게 다루느냐로 목표가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4. 스님 말씀을 실천하면서 달라진 것들

4-1. 배우자와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세 가지 방법을 집에서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배우자와의 관계였습니다.

말다툼이 생겼을 때 자리를 피하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배우자가 이상하게 봤습니다. 갑자기 자리를 피하니까요. 설명을 해드렸더니 배우자도 같이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서로 그 신호를 알고 있습니다. 자리를 피하면 잠깐 쉬는 시간이라는 걸. 5분, 10분 후에 돌아오면 온도가 내려가 있고, 대화가 더 잘 됐습니다.

4-2. 직장 생활에서도 쓸 수 있었습니다

사찰 일을 마치고 다시 일반 사회생활을 하게 됐을 때, 이 방법들이 진짜 빛을 발했습니다.

직장에서 답답한 상황이 생겼을 때, 속으로 이름을 부르고, 길게 내쉬고, 잠깐 자리를 피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바로 감정이 올라왔을 상황에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가끔 화를 제대로 못 다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건, 그러고 나서 스스로 알아챈다는 겁니다. 아, 오늘 또 그랬다. 그 알아챔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4-3. 지금도 실천 중인 이유

스님께 들은 지 꽤 됐는데 지금도 실천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명상이나 어려운 수련이 아닙니다. 자리 피하기, 길게 내쉬기, 이름 부르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래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차 한 잔 하자고 하지 않으셨다면, 그냥 그날 기분 안 좋은 채로 지나쳤을 겁니다. 그 작은 차 한 잔이 저를 꽤 많이 바꿔놓았습니다.

사찰에서 일한 6개월 동안 배운 것들 중에서, 이게 일상에 가장 오래 남은 것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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