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찰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반응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거기서 뭘 해?" "스님들이랑 같이 일해? 어색하지 않아?"
솔직히 저도 몰랐습니다. 그냥 퇴직하고 나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인 소개로 연결된 사찰 공양간 일을 덜컥 수락해버렸으니까요. 출근 첫날이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음식 만드는 일이야 집에서도 해봤고, 어렵겠어?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첫날 새벽 4시 반, 알람이 울렸을 때부터 이미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1. 새벽 5시 출근, 말은 들었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사찰 공양간 출근 시간은 새벽 5시였습니다. 집에서 사찰까지 이동 시간이 있으니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어요. 처음 며칠은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실감을 못 했습니다. 첫날은 긴장해서인지 오히려 눈이 번쩍 떠지더라고요.
문제는 사찰에 도착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1-1. 불도 켜지 않은 공양간, 이미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공양간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선배 보살님 두 분이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채로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희뿌연 새벽빛 아래에서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문 앞에 서서 인사를 드렸는데, 한 분이 고개만 살짝 끄덕이시고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셨어요.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게 첫 번째 당황이었습니다.
1-2. 아무도 먼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
일반 직장이라면 첫날 누군가 옆에 붙어서 이건 이렇게 해, 저건 저렇게 해, 설명을 해주잖아요. 저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찰 공양간은 달랐습니다.
보살님들은 친절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각자 할 일이 너무 명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벽 예불 전에 죽을 올려야 하고, 예불 후에는 아침 공양이 나가야 하고, 그 사이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이미 몸에 박혀 있는 분들이었어요.
저는 그 흐름을 전혀 모르는 채로 서 있었고, 결국 먼저 여쭤봤습니다.
"저 뭐 도와드릴까요?"
그분이 잠깐 저를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일단 쌀 좀 씻어요."
짧고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그게 제 첫 번째 임무였습니다.
2. 쌀 씻는 것도, 칼질도, 집에서 하던 것과 달랐습니다
2-1. 쌀 씻는 방법부터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집에서 쌀 씻는 거야 손으로 쓱쓱 몇 번 헹구면 끝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을 지나치던 선배 보살님이 조용히 멈추시더니 말씀하셨어요.
"너무 세게 문지르면 쌀이 부서져요. 물이 맑아질 때까지 살살."
별거 아닌 말 같지만, 그 한마디에 저는 멈칫했습니다. 쌀 씻는 것 하나도 여기서는 방식이 다르구나. 그때부터 제가 알고 있던 '당연한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2-2.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공양간에서 일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소리였습니다.
그릇을 내려놓을 때도 살며시, 칼질할 때도 소리가 크면 안 되고, 대화도 꼭 필요한 말만 작은 목소리로. 처음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불편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주지 스님께 여쭤봤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공양 준비 자체가 수행이에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담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그릇 하나 내려놓을 때도 의식적으로 천천히 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엔 불편했던 게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3. 첫날 가장 크게 당황했던 순간
3-1. 공양 올리기 전 합장,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쌀 씻는 것도, 소리 조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첫날 제가 가장 당황했던 건 따로 있었어요.
아침 공양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선배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공양 올리기 전에 합장하고 잠깐 있어요."
저는 그게 뭔지 몰라서 그냥 따라 섰습니다. 보살님이 눈을 감고 합장하시길래 저도 따라 했어요. 30초 정도 됐을까요. 보살님이 눈을 뜨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음식에 정성을 담는 거예요. 내 마음이 지저분하면 공양도 지저분해지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음식에 내 마음이 담긴다는 생각, 사실 그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거든요.
3-2. 공양상 차리는 순서, 틀리면 바로 다시 합니다
공양 음식을 다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스님 공양상을 차리는 데도 순서와 위치가 정해져 있었어요.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 반찬은 그 뒤로 종류에 따라 위치가 달랐습니다.
처음에 제가 반찬 하나를 잘못 놓았더니 선배 보살님이 조용히 다시 옮기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스님 공양상은 순서가 있어요. 외울 때까지는 옆에서 보고만 있어요."
혼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 말이 더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4. 첫날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4-1.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이상하게 맑았습니다
퇴근하고 차에 앉았을 때 시계를 봤더니 오후 1시였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8시간을 움직였는데,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이상하게 맑았어요.
집에 들어와서 밥을 먹는데, 밥 한 숟갈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걸 누군가 저렇게 정성 들여 준비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거든요.
4-2. 당황함이 시작이었습니다
6개월을 다니면서 많은 걸 배웠지만, 사실 첫날 그 몇 시간이 가장 많은 걸 바꿔놓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쌀 씻는 법, 소리 줄이는 법, 합장하는 이유. 어느 것 하나 대단한 게 아닌데, 그것들이 모여서 제가 일을 대하는 방식, 음식을 대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까지 조금씩 바꿔놓았습니다.
당황했지만, 그 당황함이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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