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손을 씻어왔습니다.
밥 하기 전에, 화장실 다녀와서, 외출하고 들어오면. 손 씻기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누 칠하고 물로 헹구면 끝. 그게 손 씻기의 전부였습니다.
사찰 공양간에서 일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스님 공양 준비를 시작하려는데 선배 보살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개수대 앞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공양 올리기 전에 손 먼저 씻어요."
저는 이미 아침에 씻고 왔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물로 헹궜습니다.
보살님이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씻는 게 아니에요."
그러시면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손 씻는 방식이 제가 30년 동안 해온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1. 손 씻기 전에 먼저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1-1. 잠깐 멈추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보살님이 개수대 앞에 서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게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물을 바로 틀지 않으셨습니다. 잠깐 그냥 서 계셨습니다. 눈을 감으신 것도 아니고, 합장을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잠깐 멈추셨습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멈춤이 무언가 다른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여쭤봤습니다. 왜 바로 씻지 않고 잠깐 서 계시냐고.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건지 한 번 생각하는 거예요. 그냥 시작하면 그냥 씻는 거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다른 게 돼요."
그 말을 듣고 나서 그 잠깐의 멈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1-2. 물 온도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멈춤 다음에 하신 건 물 온도 확인이었습니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게. 손에 부담 없는 온도. 그 온도를 맞추고 나서 손을 넣으셨습니다.
집에서 저는 그냥 아무 온도나 틀었습니다. 빨리 씻으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보살님은 물 온도 하나에도 신경을 쓰셨습니다.
"차가운 물에 놀란 손으로 음식을 만지면 안 돼요. 손이 편안해야 음식도 편안해져요."
손이 편안해야 음식도 편안해진다는 말. 처음엔 좀 과하다 싶었는데, 나중엔 이해가 됐습니다.
2. 손 씻는 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2-1. 손가락 사이사이를 닦는 방법
보살님이 비누를 손에 내시고 거품을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달랐습니다.
손바닥만 문지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하나하나 사이를 꼼꼼하게 닦으셨습니다. 손톱 밑도 닦으셨습니다. 손목까지 올라갔습니다.
제가 평소에 얼마나 대충 씻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비누 칠하고 물로 헹구는 게 손 씻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씻는 척에 불과했습니다.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손가락 사이는 우리가 제일 많이 쓰는 부분이에요. 거기가 깨끗해야 진짜 씻은 거예요."
2-2. 헹굼이 씻기만큼 중요했습니다
거품을 낸 다음 헹구는 것도 달랐습니다.
한 번 헹구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 세 번, 거품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헹궜습니다. 손을 뒤집어 가면서, 손가락 사이사이 비누 기운이 남지 않도록.
집에서 저는 거품이 대충 사라지면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살님은 손에 비누 냄새가 남으면 음식 냄새가 바뀔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비누 냄새가 남은 손으로 음식을 만지면 그 냄새가 음식에 배어요. 음식은 손 냄새까지 기억해요."
음식이 손 냄새를 기억한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2-3. 물기 닦는 것도 마무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물기를 닦으셨습니다. 공양간에는 따로 준비된 흰 수건이 있었습니다. 공양 준비할 때만 쓰는 수건이었습니다.
거칠게 닦지 않으셨습니다. 수건으로 손을 감싸듯 지그시 눌러서 닦으셨습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수건으로 감싸면서.
그 모습이 손을 닦는 게 아니라 손을 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3. 손 씻기가 마음 씻기였습니다
3-1. 세속의 손으로 공양을 올릴 수 없다는 것
한 달쯤 지났을 때 그날 아침에 배우자와 작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출근했습니다.
공양 준비를 시작하려고 손을 씻는데, 그날따라 그 행위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있었던 일, 마음에 남아 있는 언짢음. 그걸 들고 스님 공양 준비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으면서 그 감정들이 같이 씻겨 내려가기를 바랐습니다.
그 마음으로 씻고 나니까, 이상하게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공양 준비하는 동안만큼은 그 언짢음이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선배 보살님이 나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씻는 건 몸의 때만 씻는 게 아니에요. 손에 묻은 세상의 욕심이랑 번잡한 마음도 같이 씻는 거예요."
3-2. 노동이 공덕으로 바뀌는 순간
50대에 공양간 막내로 일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이 나이에 왜 이렇게 고생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날에 손을 씻으면서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만들 이 음식이 스님들 몸이 되고, 그 몸으로 수행하시고, 그 수행이 쌓이면 누군가를 위한 가르침이 된다. 내 손이 그 긴 연결의 시작이다.
그 생각이 들면 손 씻기가 달라졌습니다. 귀찮은 절차가 아니라, 내 마음가짐을 바꾸는 스위치가 됐습니다.
나를 위한 노동에서 남을 위한 공덕으로 태도가 전환되는 그 짧은 순간이, 손 씻는 동안 일어났습니다.
3-3. 생명을 다루는 손이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공양간에 들어오는 재료들은 다 생명이에요. 햇살 받고 비 맞고 자란 것들이에요. 그 생명을 다루는 손이 지저분하면 안 되죠."
그 말을 듣고 채소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시금치 한 단, 무 하나하나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을 키운 땅, 물, 햇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생명들을 다루는 손이니까 깨끗해야 했습니다.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생명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4. 집에 돌아와서 달라진 것
4-1. 저녁 밥 준비 전 손 씻기가 달라졌습니다
사찰에서 배운 손 씻기 방식을 집에서도 해봤습니다.
저녁 밥 준비하기 전에 잠깐 멈추고, 따뜻한 물에 천천히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씻고, 지그시 눌러서 물기를 닦는 것. 2분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2분이 요리하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귀찮은 저녁 준비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뭔가를 시작하는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우자가 어느 날 말했습니다.
"요즘 음식 맛이 다른 것 같아. 뭐가 달라진 거야?"
재료도 같고, 레시피도 같았습니다. 달라진 건 손 씻는 방식과 그 마음뿐이었습니다.
4-2.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손을 씻으면서 물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예전엔 손 씻는 동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뭐 해야 하지, 저 사람이 왜 그랬지. 손은 씻고 있는데 머릿속은 딴 데 있었습니다.
지금은 물소리를 듣습니다. 30초, 1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물소리에만 집중합니다.
싱크대 명상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하지만, 그 짧은 집중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순간이 됐습니다.
4-3. 가장 사소한 행동 속에 가장 깊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6개월 공양간 막내 생활이 가르쳐 준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손 씻기가 가장 오래 남은 이유가 있습니다.
매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매일의 행동이 달라지면, 매일이 달라집니다. 손 씻기 하나가 요리하는 마음을 바꾸고,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선배 보살님이 처음에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그렇게 씻는 게 아니에요."
그 한마디가 손 씻기만 바꾼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저녁 밥 준비하기 전, 잠깐 멈추고 따뜻한 물에 천천히 손을 씻어보세요. 비누 거품이 씻겨 내려가면서 오늘 하루의 번잡함도 같이 흘려보내는 그 2분이,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꿔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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